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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수상(受賞) 후보자 (下)- 모지선의 ‘그림이 있는 수필’

작성자
mojeesun
작성일
2016-03-04 18:04
조회
1978


생각해보면 어린 시절 학교생활 내내 늦게 일어나 지각을 밥 먹듯 했고, 그러니 성적도 좋을 리 없고, 남들은 다 타보는 그 흔한 상 한번 받아보질 못했다. 건강도 겨우겨우 학교를 다닐 정도였고, 감기만 걸려도 결석을 했다.
아이들이 기다리는 봄, 가을 소풍조차 걷는 것이 힘들어서 즐겁지만은 않았다. 수학여행 때도 나는 설악산에 가서 흔들바위까지도 가지 않고 방에서 짐을 지켰던 기억이 있다. 무척 약골이어서 학교 다니는 일조차 그렇게 버거울 수가 없었다.
나이가 들면서 건강한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은 믿지 않는 사람도 더러 있지만 지금도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이 나에겐 정말 힘든 일이다.
특히나 전교생을 모아 놓고 아침에 하는 운동장 조회 시간은 나에겐 무척 고역이었다. 힘겹게 서서 교장 선생님 말씀이 언제 끝이 나나 하는 생각 뿐….
앞에 불려나가 우등상이나 개근상을 받는 친구들을 우두커니 바라보면서 ‘저 애는 참 이상하다. 어떻게 하루도 안 빠지고 학교를 제 시간에 올 수가 있지? 시험을 저렇게 잘 볼 수가 있지?’ 이런 생각을 할 정도였다.

자책과 소외감의 길목에서 생각해낸 것이 내가 나에게 칭찬과 상을 주기로 한 것이었다. 늘 주류에 끼지 못한 아웃사이더의 자구책이라고 해야할 지, 내가 스스로 채점관이 되어 나에게 상을 주는 것이다.
착한 행동을 한 것이나 나쁜 일을 한 것도 남은 알 수가 없지만 나 자신은 정확히 알 수가 있지 않은가? 남이 보기엔 대단한 일도 아닌 사소한 일일지라도 나에겐 정말 힘든 일들을 무사히 끝냈을 때나 모두가 외면하는 왕따를 이겨내고 그 길을 고수했다든지 남을 위한 작은 배려와 봉사의 행동에 스스로를 격려하며 나는 나에게 상을 주었다.
‘수고했어, 힘들었지?’, ‘그래도 잘 참아냈어’라며 정도에 따라 커피 한 잔 일 때도 있고, 좋은 책 한 권일 때도 있고, ‘오늘 하루는 모든 일에서 벗어나 즐겁게 놀아도 돼’하고 휴가도 준다.
나는 나에게 상을 받을 때가 그 어느 순간보다 무척 기쁘다. 눈물이 날 정도로 기쁘다. 그 상은 진실로 공정하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을 다 속인다 해도 나 자신만큼은 속일 수 없지 않은가?
tv나 라디오에서 수상자들이 “더 노력하라고 주는 상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곤 한다. ‘그래 맞다!’ 더 잘 하라고 주는 상이다. 나를 버리지 않고 지켜준 것이 감사해서 주는 상이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주는 상 외에 ‘신이 주시는 선물’ 5월이 한창이다. 온갖 꽃들이 앞다투어 피고 있다. 또한 파릇파릇한 신록의 잎새들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자연 역시 아름답고 화려한 부상(副賞)으로 나의 인생을 격려하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다.
꽃잎들이 5월의 미풍에 꽃비되어 내릴 때 가만히 이런 소리가 들려온다. ‘앞으로도 너에게 줄 크고 작은 최고의 상들이 준비되어 있단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가 아닌, 순수하게 노력하고 땀 흘린 댓가로 주는…. 너는 나의 유일한 수상(受賞) 후보자란다.’
어릴 때부터 남보다 허약하고, 똑똑하지 못하고, 늘 실수와 실패 속에 상 받는 사람을 구경만 하던 내가 그래도 오늘날 예술가로, 사회인으로 낙오되지 않고 이렇게 서 있기까지는 나에게 받은 크고 작은 상이 큰 힘이 됐다고 생각한다.
이제 숲길을 혼자 걸으며 길을 헤멘다 해도 나는 그렇게 두렵거나 외롭지 않다. 치열하고 각박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항상 열심히 노력하면 상을 받을 수 있는, 나는 나의 ‘수상 후보자’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