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ritings

월광 소나타 (下)-모지선의 ‘그림이 있는 수필’

작성자
artimomo
작성일
2016-03-03 21:23
조회
2033


그 후 여고시절, 나는 <라프소디>라는 영화를 보고 ‘이 담에 멋진 연주자하고 결혼해야지’ 하는 생각을 하였다. 연주회의 제일 앞좌석에서 어깨를 다 드러낸 끈 달린 드레스를 입고 밍크숄을 두르고 연주자의 시선을 느끼며 음악을 듣는 아름다운 여배우의 모습이 ‘소녀의? 꿈’이었다.
하지만 그 꿈은 몇 년후 대학에 가서 산산이 깨어졌다. 어느 날 대학 기숙사에서 내가 그토록 골탕을 먹인 과외 선생님의 방문을 받았다. 기숙사 골목을 친구와 올라가는데 앞의 남자 모습이 어디서 본 듯한 느낌이 났다.
난 친구에게 “얘, 저 앞의 남자 어쩌면 옛날 과외 선생님이랑 똑같니?” 하며 걸어올라갔다. 그런데 이럴 수가! 정말 기숙사에 있는데 인터폰으로 면회 왔다고 연락이 왔다. 그 선생님이셨다. 아마 선생님은 그 뒤 좋은 회사에 취직하여 나에게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으셨나 보다.
그 때의 떨어진 양말이나 신는 선생님이 아니라 서울의 잘 나가는 회사에 당당히 다니는 모습을…. 내가 대학에 무사히 입학한 소식을 듣고 찾아오셔서 그날 저녁 명동에 있는 근사한 양식집에 데리고 가서 비싼 식사를 사 주셨다. 그 때 대학 기숙사엔 언니와 같이 있었기에 언니와 나, 선생님과 같이 온 친구분까지 넷이서 우아한 양식집에서 칼로 썰면서 식사를 했다.
그렇게 괴롭혔던 선생님인데 야단은 커녕 자랑스러운 제자로 친구에게 소개하고, 그 때 이야기를 즐겁게 추억하며 부모님을 만나고 싶어 하셨다. 헤어지면서 “피아노 선생님이 보고싶어 한다”며 주소를 주고 꼭 찾아가라 하셨다.

내 여고시절의 환상인 피아노 선생님을 나도 만나고 싶었다. 이제는 까만 연미복을 입고 피아노 앞에 앉아 계실 선생님을 생각하며….
얼마 뒤 여름방학이 되어 부산에 가서 피아노 선생님을 찾아갔다. 어느 건물 2층엔가 막 피아노학원을 차리셨는지 피아노가 몇 대 있었고 무척 어수선했다.
선생님은 대학생이 된 나를 반갑게 맞이하셨다. 나에게 차를 타주기 위해 한쪽 코너로 커튼을 젖히고 들어가셨다. 커튼 뒤가 간이주방인지 선생님은 한쪽 구석에 있는 석유난로를 피우려고 고개를 수그리고 그 위에 주전자를 올리려고 하셨다. 석유난로를 피우고 주전자가 부딪히는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듣는 순간, 나는 나의 환상이 깨어지는 소리를 들었다.
장미 흐드러진 5월의 달빛 아래 흰 와이셔츠를 입은 카리스마 넘치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들려나온 ‘월광 소나타’의 소리가 어딘지 허름한 티에 석유난로를 피우며 양은 주전자 덜그럭거리는 소리로 변하는 순간, 나의 소녀시절 꿈은 와장창 깨어졌다.
나는 타온 차엔 손도 안대고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거리로 뛰어나왔다. 영-수 선생님한테는 그렇게 건방지고 오만방자하던 장난꾸러기가 얌전한 숙녀처럼 내숭을 떨며 바라보던 ‘월광 소나타’의 선생님은 그 순간 내꿈에서 떠나갔다.
태양이 비치는 바깥으로 나오자 나는 현기증을 느꼈다. ‘그게 아니야, 냄비나 주전자 덜그럭거리는 그런 소리가 아니야! 그런 모습이 아니야!’
한낮의 여름 햇살은 사정없이 내려쬐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나 기가 찬다. 30년도 훨씬 전 그 당시는 보통이 석유난로를 조리기구로 쓰는 거고, 반가운 마음에 어설프게 차를 타주려고 덜그럭거린 게 무슨 대수라고 기겁을 하며 도망나왔단 말인가?
지금은 하루에도 몇 번씩 설거지통에 손을 담그고, 냄비 덜그럭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허름한 티셔츠 복장으로 설거지하는 나를 보며 쓴웃음을 짓는다. 나는 소녀시절엔 영-수 선생님을 괴롭혔고, 대학생이 되어선 피아노 선생님에게 못쓸 짓을 했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베토벤의 ‘월광 소나타’를 무척 좋아한다. 그리고 눈을 감으면 달빛이 비치는 5월의 창가에서 ‘월광 소나타’의 선생님이 피아노를 치신다. 그리고 그 소리는 나의 죄를 사하는 미사곡이 되어 나의 가슴을 두드린다.